소셜밸런스(SB)가 국제 평화운동 단체인 <평화의 친구들>과 함께 철원 국경선평화학교(Border Peace School)를 다녀왔습니다. 비무장지대(DMZ) 설치 60주년을 맞았던 지난 2013년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에 문을 연 국경선평화학교는 그해 3월 1일 개교식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평화봉사 활동가(일명 피스메이커, peacemaker)를 키워 오고 있는 곳입니다.

서울 사무실에서 출발한 SB는 철원에 도착한 후부터는 오늘 하루 일행을 인솔해 주실 국경선평화학교 소속 전영숙 총무부장님의 안내를 받아 움직였습니다. 일정은 농산물검사소 일대를 견학하고 국경선평화학교, 평화전망대를 방문한 이후 소이산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진행됐습니다. 전 과정을 전영숙 총무부장님의 친절하고 깊은 식견의 해설과 함께 진행되어 철원이라는 지역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는데요. 서리가 내리고 난 후에 수확한다고 하여 서리태라고 불리는 검은콩을 이용해 요리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먹는데 정신이 팔린 탓에 다양한 검은콩 요리는 사진이 없네요…;;; 맛도 정말 일품이었지만 또 한가지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이 식당이 지역 농축산물을 최우선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음식 재료가 산지에서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수송 거리를 뜻하는 ‘푸드 마일리지’가 짧은 로컬 푸드를 최우선으로 사용한다는 뜻인데요. 식품의 신선도나 식량 자급률 문제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에도 대응하는 훌륭한 식당이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된 서리태로 배를 든든히 채운 후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시는 건물은 철원군 철원읍 외촌리에 소재한 농산물검사소입니다. 본디 이름은 ‘곡물검사소 철원출장소’인데요. 일제강점기인 1936년 당시 철원지방 농산물의 품질을 검사하던 공공기관 건물이었습니다. 곡창지대였던 철원평야의 풍성한 농산물이 이곳에 집결되었을 텐데요. 일제에 의한 곡식 수탈이 이루어졌던 주요 현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곳 농산물 검사소는 해방 이후에도 아픈 역사의 한 단면으로 남게 되었는데요. 불순분자를 색출하고 체포했던 공산당의 검찰청으로 사용된 적도 있습니다.

농산물검사소 일대는 옛 철원의 시가지였습니다. 현재는 논밭만 남아있는 상태로 그 흔적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 바로 농산물검사소 건물입니다.
한편, 농산물검사소를 지나 조금 더 민통선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위 건축물은 제2금융조합지입니다. 본 건물은 모두 무너지고 앙상한 내부 구조물 잔해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금고(金庫)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금고가 가장 튼튼하다 보니 전란에도 살아남은 게 아닐까요? 당시 옛 철원 시가지에는 식산은행 철원지점을 비롯해 동주금융조합, 철원금융조합, 철원제2금융조합 등 4개의 금융기관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농산물검사소 일대를 지나 북으로 차를 달립니다. 운전을 하며 해설을 해주시던 전영숙 총무부장님이 차가 향하는 곳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북한이에요.”
“??????!!!!!”
이렇게 가까운 곳에 북한 땅이 있다니. 일행은 놀람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분단 이후 금단의 땅이 되어 버린 그곳. 물리적인 거리보다는 이제 심리적인 거리가 더욱 멀어져 국민 스스로가 벽을 쌓고 있던 그곳이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분단의 상황과 통일에 대해 품고 있던 그간의 생각이 구조째 변화할 만한 경험이었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민통선 내에 위치한 DMZ평화문화관에 있습니다. 민통선지역이라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곳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일대의 풍경도 그리고 내부에서 열리고 있는 국경선평화학교의 가르침도 이념의 대립을 넘어 존재하는 근본적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명패에 ‘평화의 씨앗들’이란 표현이 보이시나요? 국경선평화학교를 설립하고 현재 교장직을 맡고 계시는 정지석 목사님은 ‘평화의 씨앗’을 찾기 위해 5년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장 날것이 보존된 민통선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정지석 목사님이 학교를 설립하고 피스메이커를 길러내겠다고 했을 때 한 유대인 학자가 “미친 상상”이라고 평가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상상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과연 평화가 절로 찾아올까요?

국경선평화학교의 커리큘럼과 수업방식 등 전반적인 설명을 전해 듣습니다. 인상적으로 남은 건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보다 자발적인 배움이라는 점과 특히 고뇌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시간을 충분히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철원의 마지막 일정인 소이산 산책은 바로 그런 극대화된 명상의 시간의 정점에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소이산 산책은 SB 일행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닌 국경선평화학교 구성원들이 매일 오후 3시 진행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이들은 소이산을 올라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마음에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SB도 이 일정에 동참했습니다.

사면이 트여있는 소이산 정상은 위로는 하늘을, 아래로는 철원의 대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 사이 존재하는 건 각자의 마음뿐이지요. 모서리에 걸터앉아 각자의 상념에 빠져듭니다.
소이산은 해발 362미터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과거 고려 시대부터 외적을 출현을 알리던 제1로의 봉수대가 있었을 만큼 일대에서는 시야가 좋은 산입니다. 한국전쟁 이후로는 군사기지로 사용되었고, 때문에 출입이 통제돼 왔습니다. 지금은 정상부가 개방이 되고 또 둘레길도 생겨 많은 방문자들이 찾고 있지만, 여전히 산의 북쪽 산자락은 모두 지뢰지대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 교장이신 정지석 목사님을 소이산 정상에서 만났습니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SB와 <평화의 친구들> 일행을 반겨 주셨는데요. 모든 구성원이 이렇게 매일 소이산을 산책한다는 사실이 대단하면서도 또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목사님과의 담소가 이어졌습니다. 정 목사님은 국경선평화학교가 이곳 철원에서만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국경선평화학교가 롤모델이 되어 파주나 고성 등 민통선이 있는 다른 지역에도 다양한 학교가 생겨나길 소망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피스메이커를 길러내면서 동시에 청소년들이 각 지역의 학교를 방문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청소년들이 평화 통일을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깨닫는 것이 미래의 한반도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고 계셨습니다.
당장의 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힌다는 이유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평화와 통일은 영원히 요원한 일이 아닐까요? SB는 국경선평화학교가 널리 알려져 평화 통일을 위한 일꾼인 피스메이커를 길러내길 기원합니다. 이어 많은 청소년과 대중이 참여해 평화 통일에 동의하기를 기원합니다.
정지석 목사님이 일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씀으로 이번 탐방기를 마무리해 볼까 합니다.
“길게 봐야 한다. 70년간 증오했으니, 적어도 70년간 남북 화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한다.”
* 참고
국경선 평화학교 비무장지대 3월 1일 개교, 한겨레, 2013
[人터치] 국경선평화학교 정지석 목사, 한겨레 휴심정, 2014
철원군청 등
*이 글은 소셜밸런스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http://blog.socialbalance.co.kr/220671397698